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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54. 4. 29. 선고 4287형상55 판결

[주거침입살인][집2(1)형,001] 【판시사항】 피의자의 자백과 그 증거력 【판결요지】 피의자가 그 범죄사실을 자백한 경우에도 공판에서의 피고인의 공술이 그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피의자로서의 자백은 고문에 의한 것이라고 반복할 뿐만 아니라 그 피고인이 피의자로 장기간의 구속을 받은 사실 및 상피의자의 구속중 사망한 사실을 종합고찰하여 그 자백이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이유있다고 인정된 때에는 그 자백을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참조조문】 형사소송법 제308조, 제309조, 형사소송법 부칙 제1조 【전 문】 【상 고 인】 검사 【원심판결】 제1심 광주지방법원, 제2심 광주고등법원 【주 문】 본건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대리 검사의 상고취의는 본건 공소사실은 공판청구서기재와 여히 (기록 723정 내지 727정 참조) 옥천면내 김, 양 양씨족투쟁에 있어 극도로 반감을 포회한 나머지 김씨파 두목이라고 지칭할 공소외 1(기사망)이 친제인 피고인 1과 같이 피고인 2 숙부 공소외 2가에서 전 년까지 고용하였던 피고인 3과 모의한 후에 4명이 미리 준비하였던 한국식 「도끼」와 죽창 등을 소지하고 단기 1949년 1월 30일 (음정월 2일) 오후 12시경에 피고인 2가 사랑으로 출발하여 익 31일 오전 1시경에 양씨파의 대표인물이라고 지칭된 피해자 공소외 3가에 침입하여 피고인 1, 피고인 3 양인은 동가전정에서 파수를 보고 피고인 2, 공소외 1(사망)은 공소외 3 침실에 침입하여 취침중인 공소외 3을 소지의 한국식 「도끼」와 죽창으로 난자한 결과 동인으로 하여금 두부골절에 이르는 절창으로 두부대동맥절단을 초래케하여 다량의 출혈로 사망케하여서 살해의 목적을 달하였던 것인바 법원은 이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의 언도를 한 것이다 일건기록을 정독 심안컨대 피고인 2는 종시 일관하여 범행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으며 피고인 1은 일시 경찰에서 범죄사실을 자백한 사실이 있으나 (기록 149정 표면 1행부터 156정까지 참조) 검찰 이래 전적으로 부인하고 다만 피고인 3은 경찰에서는 물론이요 검찰청에서까지 상세히 본건 범행을 시인 ( 피고인 3에 대한 사법경찰관의 피의자 신문조서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 및 판사의 피고인 신문조서 기록 118정, 328정 406정 618정 703정 참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심공판 이래 원심공판에 이르기까지 다른 피고인 동양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피고인 1은 본건 범행을 부인하는 사유로서 자기는 당야 피고인 3 등과 동행하여 범행장소에 갔든 것이 아니라 당시 한청 건설과장으로서 경비외곽 단체의 간부 자격으로 한청단원등과 함께 지서 외곽선 경비에 당하게 되어 지서에 시기중 숙직실에서 지서원 및 경비원등과 함께 화투를 치고 놀았든 사실이 범행이 감행되었다는 시각에는 분명히 지서에 있었다는 소위 부재증명을 내걸고 피고인 2는 역시 범행 당야 자기는 자가 사랑에서 거리 공소외 4외 부락 청년들과 함께 소위 세투를 하고 놀다가 야반에 취침차 내실로 들어간 사실이 있어 범행이 감행되었다는 시각에는 자기는 범행장소에 간일이 없었다는 역시 부재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동인에 대한 사법경찰관의 피의자 신문조서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 및 1심 원심공판조서 참조)자에 전기 주장사실을 상세히 검토하건대 1. 피고인 1의 주장 사실에 있어서는 동인은 전기와 여히 주장하고 있으나 범행 당야 지서에 있었든 당시의 의용단 간부의 1인인 공소외 5는 자기는 당야 지서에서 경비대기를하고 있었으며 그시 피고인 1은 분명히 지서에 나와서 대기근무 하였든 사실이 없다고 진술할 뿐아니라 (기록 368정 과면 665정과면 제2행 부터 666정 표면말행까지 참조) 당시 지서주임으로 금무하든 공소외 6 역시 사건당야 피고인 1이 지서에서 대기근무를 하면서 화투를 치고 있었든 것을 본 사실이 전연 없고 따라서 자기가 모른다면 동 피고인이 지서에 나왔든 사실이 전연없는 것으로 볼수 받게 없다고 확실히 증언하고 있으며 (기록 375정 표면 제1행 부터 376정 표면 제7행까지 참조) 또 당시 지서직원으로 근무하였든 순경 공소외 7, 공소외 8 역시 사건 당야 피고인 1이 지서에 나와 대기근무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음에 ( 공소외 9에 대한 위증 교사 피고사건 기록 제129정 내지 160정 참조) 피고인 1의 항변은 이유가 없다 더구나 피고인 1은 경찰에 체포된 후 직시 자기는 사건 당야전기와 여히 지서에 대기근무 하고 있어서 이 사실은 주임도 잘 안다고 항변한바 있어(그 중 신문에 따라 범행을 자백하였지만) 이 사실이 가족에게 알려지어 당시의 지서주임 이하 지서직원만 피고인 주장 사실과 부합하는 진술을 하면 모면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피고인 1의 종제인 공소외 10과 피고인 2의 친제인 공소외 9 등이 피고인 1의 경찰 이래의 진술을 김씨측과 사둔관계에 있는 전기 지서주임 공소외 6에게 전함과 동시에 차후 증인으로 신문받을 시에는 사건당야 피고인 1이 지서에서 대기근무한 사실이 있었던 것이라고 증언하여 달라고 요청한 결과 그후 동 지서주임은 수명판사에게 대하여 동지의 허위증언을 한바 있고 주임으로서 당시 부하직원이였던 전현 공소외 7, 공소외 8 등에게도 공소외 9의 부탁을 전달하여 피고인 1의 진술에 부합토록 책근한바 있어 동증인 등 역시 공판정에서 일응 허위의 진술을 한바 있었으나 그 후 수사를 가함으로 인하여 전기증인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등은 사건당야의 피고인 1의 소재에 대하여 하등 아는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와 여히 허위증언을 한 것이 판명된 바 있어 차로 인하여 공소외 11가족 간의 책근을 능히 추측할 수 있으며 따라서 당야 범행장소에 없었다는 주장 즉 부재항변은 그 이유가 없다 ( 공소외 9에 대한 위증교사 피고사건 기록 참조) 2. 피고인 2 주장사실에 있어서 당초 동인은 본건 살해사건을 공비의 소행으로 귀결시키고자 거리 공소외 12라는 좌익인물을 사건발생 당일 상봉한바 있었으며 그 시 동인이 피해자 공소외 13을 숙청하고자 하였던 사실이 있는 듯 진술하였다가 그것이 상피고인 등의 진술로 허위로 돌아가자 다시 주장하게 된 것이 당야 화투를 하다가 야반에 취침차 내실로 들어갔던 것이라고 하며 그 시 거리 공소외 4와 다수 청년들과 놀았던 것이라고 변소하게 된 것인바 동인은 그 주장에 있어 당야 자가사랑에서 전기 공소외 4와 친제 공소외 14, 공소외 4의 제 공소외 15, 공소외 16 외 수 3인 등과 화투를 한 것 (99정이면 제5행 부터 202정표면 제6행, 218정표면 제4행 부터 220정이면 제6행까지, 350정표면 제1행 부터 352정표면 제1행까지 참조) 당야 화투를 하고 함께 놀았으며 또 피고인 2는 도중 오전 1시반경 이라고 기억되는 시간에 취침차 내실로 갔던 것이라고 증언하는 공소외 4의 검찰청에서의 증언에는 당야 화투를 하고 논 자는 피고인 2를 포함하여 계 14, 5명이 었다고 진술하여 그 수가 현저히 차이가 있으며 (기록 505정표면 말행 부터 506정표면 제5행까지 참조) 또 동인의 증언내용에 있어 당시 동석동유하였다는 동인의 친숙 공소외 17은 그 후 검찰청에서의 증언에 있어 자기는 화투를 좋아하지 않아 당야 동가사랑에 갔던 일이 없으며 갔었다면 당연히 친숙되는 공소외 18과도 상봉하였을 것인데 동인을 상봉한바 전혀 없으며 더구나 화투를 즐겨하지 않어 밤을 새워가면서 논 일은 생후 전무하다고 증언하고 있어 이점 공소외 4와 상봉한 진술을 할 뿐아니라 (기록 559정표면 제7행 부터 562정표면 제9행까지 참조) 공소외 4의 진술에 당야 밤을 새워가면서 놀고 있던 중 3일 오전 6시경 동트기 전 시각에 거리경비 책임자 이였던 공소외 19가 전기 피고인 2가 사랑방에 들어와 경비원의 재실여부를 묻기에 없다고 대답하였더니 그 말끝에 공소외 13이 암살당하였다는 말을 하게되어 비로서 전기 살해사실을 알고 놀고 있던 화투를 중지하고 귀가한 사실이 있다고 하였으나 거리 경비책임자 공소외 19는 경비막에 찾어왔던 지서직원으로부터 공소외 13의 피살사실을 득문하고 경비원이 없기에 경비원을 찾으러 타 경비막으로 가는 도중 정초의 야간이라 혹은 청년 등과 함께 놀고자 또는 취침코자 사랑방에 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도로변에서 피고인 2 사랑방에 향하여 경비원 있소」 하고 불러보자 수모인 지 「없다」 고 하는 대답에 그 사랑에 들어간 일도 없고 또 사랑방을 창으로 들여다 본 일도 없다고 진술하고 있음에 (기록 515정표면 제5행 부터 521정이면 제5행까지 참조) 증인 공소외 4의 증언 역시 부정확하기 한량 없으며 따라서 피고인 2가 당야 동인과 함께 화투를 하고 놀았던 사실 및 그 도중 야반에 취침차 내실로 들어갔다는 증명이 성립되지 않는 반면에 증인 공소외 17, 공소외 4의 증언과 피고인 2의 진술과의 모순으로 범행현장에 피고인 2가 없었다는 주장 즉 부재증명은 그 이유가 없다 이상 피고인 1, 피고인 2의 각 주장 사실에 반하여 피고인 3은 경찰에서 본건에 대하여 상세히 진술하였을 뿐 아니라 경찰구속시 신중을 기한 강제처분에 있어서의 장흥법원 지원판사에 대한 신문에 있어서도 시종일관 범행을 시인하였고 기후 검사의 1회, 2회, 3회의 계속신문에 있어서도 본건 범행전부를 시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심공판이래 원심공판에 이르기까지 본건 범행을 부인하여 전년 고용주 공소외 2가에 세배간 것도 정월 2일이 아니고 정월 6일경에야 비로서 세배차 갔던 것이고 당일 공소외 1을 상봉하여 야간에 동행을 요구한 사실도 없고 당야 피고인 2가 사랑에서 취침한 사실도 없이 따라서 당야 야반이 공소외 1 및 다른 피고인 등과 동행하여 공소외 20가에 침입하였던 사실 및 공소외 13가에 침입하여 파수를 보았던 사실 또 공소외 1 및 피고인 2 등이 피해자 침실에 침입하였던 현장을 목격한 사실 등이 없을 뿐 아니라 공소외 1로부터 현금 5천환을 교부받은 사실도 없고 다만 그 후 정월 7일 고마도로 해태 품팔이차 출발하였던 것이라 변소하며 경찰서에서는 경찰관이 조속히 해결되어 무사히 귀가할 수 있다고 하는 말에 부득이 신문하는대로 대답한 것이고 장흥법원 지원판사에게 대하여 범행을 자백한 것은 당시 경찰지서에서 신문받은 것이라 신문하는 자 말이 판사이라는 것을 몰랐던 까닭에 경찰관 동양 자백한 것이라고 변소하고 있으나 경찰에서의 자백은 별도로 하더라도 전기 판사에 대한 자백은 비록 피고인 자신은 당초 판사라는 정을 몰랐다하나 이점 증인으로 신문받은 해남 경찰서수사 주임 공소외 21의 증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장흥판사가 과거 신문에 있어 판사이라는 점을 명시하지 않았던 관계로 사후에 심착이 생기였던 일에 조감하여 피고인 3 신문시에는 분명히 그 점을 명언한바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충분히 반증이 설 뿐 아니라 피고인 3이 신문자가 판사라는 것을 몰랐다 손치더라도 판사에 대한 진술과 경찰관에 대한 진술이 전연 상위 하여야만 될 리 만무함에 이 점 변소는 하등 이유가 없으며 그 후 검찰청에 송치된 당일도 경찰관이 경찰에서 진술하면 2, 3일내에 해결되어 석방될 것이라고 한바 있으므로 인하여 자백하였다 하나 피고인 3에 대한 검사의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에 명기된 바와 여히 상피고인 1, 피고인 2가 본건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데 혼자서만 본건 범행사실이 상위없다고 진술한 것이 아니라 만일 경찰에서 엄문 기타로 자백하였다면 금일 솔직히 사실대로 진술 한다는지 다짐을 검사로 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본건사실이 상위없다고 진술 하였으므로 인하여 차이유 역시 무의미 하다고 사료하며 검사의 제3회 신문시에 상피고인 1, 피고인 2와 대질한 바 유한데 그 시의 피고인 3의 진술내용을 상세히 검토하여 보건데 시종일관 경찰이래의 진술을 유지하여 타피고인 면전에서도 본건 범행을 자백 하였을 뿐 아니라 타피고인 등의 범행부인을 상금도 자파세력만을 과신하는 소치라고 진술 하였던 것임에 피고인 3의 전기진술은 합리성있는 진실이라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피고인 3은 사건당야에 상피고인 2가 사랑에서 취침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고 당야 동숙하였다는 공소외 22, 공소외 23 역시 당야 동숙사실이 없다는 지의 진술을 하고 있으나 동인 등의 우진술은 다만 공소외 22분에 있어서는 자기는 연소한 관계로 연장한 피고인과는 평소 상종치 않았던 것이라 동숙한 사실이 없을 것이라고 기억한다는 정도의 진술이고 (기록 250정표면이면 810정이면 제10행부터 821정이면 말행까지 참조) 공소외 23 역시 출발전야는 선모가 사랑에서 취침하였던 것이며 피고인 2가 사랑에서 피고인 3과 동숙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만 4년전 「하루밤」의 일을 일기에 기록도 하지 않고 전기와 여히 확실히 기억할 특수지력을 가진 증인도 아니고 항차 농촌의 범부에 불과한 증인으로서 우기억을 기초로 한 우진술은 공등조신력이 없을 뿐아니라 동인증언에 있어 출발 동행당시 피고인 3은 백색 한복상하에 백색주의를 착용하였고 모자는 중절모자를 착모하였다고 진술 하였으나 이는 피고인 3자신이 진술하는 바 고마도행 당시 백색 한복상하의만 착용하였을 뿐 주의나 또는 중절모자를 착모한 사실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도 전연 상이한 것을 보면 우증인의 진술이 전연 허구한 추상에 불과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 855정표면 제5행부터 860정표면 제4행까지 903정이면 제3행부터 905정표면 제2행까지 각 참조) 또 피고인 3은 본건 범행후 공소외 1로부터 여비조로 금 5천 원 (구화) 을 급여받어 차로써 익일 고마도로 출발한 것이라는 경찰에서의 진술을 반복하여 고마도에 간 것은 정월 7일 이후이고 공소외 1로부터 금 5천 원(구화)을 교부받은 사실은 없다고 진술하나 정월 3일 고마도로 갔다가 정월 7일 고마도로 갔거나 이것은 본안사건에 하등 소장을 초래할 문제가 아니고 다만 일정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상과 여히 피고인 1의 당야 지서에서 대기근무하였다는 부재주장 피고인 2의 당야 세투를 하고 놀다가 내실로 들어갔다는 부재주장 공판정에서의 피고인 3의 사건당야 피고인 2가 사랑에서 숙박한 사실이 없다는 진술 및 공소외 1 피고인 1, 피고인 2 등과 동행하여 공소외 13가에 침입하여 공소외 1부자가 동인침실에 들어가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한 일이 없다는 변소는 성립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동취지의 각 증언 역시 조신력 없는 것으로 사료됨과 동시에 피고인 1의 질이며 피고인 2의 친제인 공소외 9가 본건에 관하여 위증교사로 단기 1953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 제소되어 1심, 2심 공히 징역 8월 (1년간집행유예)에 각 처형되어 확정되였으며 기타관계자는 위증죄로 기소유예처분을 받고있음에 재론의 여지가 없는 바이다 (위증교사피고사건 역시 전기형사1부담당) 일편 피고인측에서는 본건 범행이 좌익도배의 소위 숙청이였던 것이라 그 변소하고 있으나 이점에 대하여는 증인 공소외 24 및 공소외 25의 증언에도 유한 바와 여히 당초에는 과연 그러한 풍문도 있었으나 당시 발생한 소위 숙청에 있어서는 해남군 삼산면 현산면에 동종사건이 발생한 바 있어 동건의 피해자 등은 경찰에 밀고 또는 합작하여 토공전선에 활약하였던 자 등이라 거등의 시잠이라는 것을 일응 추측 또는 판명된 바도 있었으나 본건에 있어서의 피해자는 8.15해방후 은퇴하여 두문불출하고 있는자로서 전혀 좌익도배 등으로부터 숙청을 당할 하등의 혐의도 없는 자이며 피해자가 두문불출하는 은퇴인이라는 점을 피고인측에서도 인정하고 이상 또는 좌익도배가 숙청하였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 우변소 역시 이유가 없다 이상과 여히 관찰할진대 피고인 3의 범행은 물론 피고인 1, 피고인 2 양인의 범행도 피고인 3의 진술에 의하여 그 증명이 충분하다고 사료하는 바이다 우와 여히 범죄의 증명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의 언도를 하였는바 이는 인정된 사실에 대하여 법률을 적용하지 아니하였다는 비난을 면치못할 것임으로 형사소송법 제409조에 의하여 상고를 신립하는 바이다」함에 있다 심안컨대 우상고 취의의 요지는 본건 범행자 중 피고인 2는 그 범죄사실을 종시 부인하고 동 피고인은 본건 범행일시에 자가에서 수인과 속칭 세투를 하고 있었다고 변명하나 이에 부합하는 증언은 상호간에 상의가 있고 이를 부인하는 증언도 있으므로 믿을 수 없다는 것 피고인 1은 경찰에서 일시 자백하였으나 그 후 다시 사실을 부인하고 그 당시에 소관지서에서 청년들과 화투를 하면서 대기근무에 종사하고 있었다고 변명하나 그 당시 동 피고인을 보지 못하였다는 증인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변명에 부응하는 증인이 위증죄로 확정판결을 받은 점으로 보아 이 변명도 믿을 수 없다는 것 피고인 3은 경찰이래 검찰까지 본건 범행을 자백하였을 뿐 아니라 강제처분에 의한 판사의 신문에 대하여도 범행을 자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심 이래 그 범행을 부인하고 우 강제처분에 있어서의 자백은 판사인줄 모르고 한 것이라고 변명하나 이에 부응한 듯한 증언도 신빙성이 없다는 것 등을 들어 본건 각 피고인의 범행은 그 증명이 충분함에 불구하고 원심이 범행의 증명이 없다고 인정하였음은 부당하다는데 있으나 기록을 정사컨대 본건은 당초의 범죄탐지단서가 막연한 풍문에 의한 것이 그 생활이 극빈한데다가 남편은 도피되있고 자기를 구타한다는 이유로 별거중인 피고인 3의 처가 남편이 본건 범행을 하였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근거로 하여 피고인 등을 단기 4286년 1월 25, 6일경부터 3월 5일까지 해남서유치장에 현행법상 최장기의 구속취조를 한 점 특히 피고인 강은 본건 소위 단서발견후 별건으로 약 40일간 구속을 계속한 의심도 농후한 사실 피고인 등과 공범혐의로 구속취조 중 피의자가 사망한 사실을 종합고찰하면 동 피고인 등이 상당한 압박감을 느낀 사실을 규지할 수 있고 피고인 강이 판사의 강제처분에 의한 신문이 경찰관입회하에 경찰서출장서에서 행하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과연 그 신문이 자유분위기보장에 충분하였는가 의심되는 점 특히 동 피고인의 당시 신문관이 판사인지 경찰관인지 검사인지 부지였다는 극력 주장도 주의할 바 아니라 할 수 없는 점에 상도하면 소론 일부자백의 신빙력에 의심을 가짐은 당연하다 할 것이므로 결국 논지는 원심이 그 전권에 속하는 자유심증에 의한 증거의 취사와 사실인정을 반대증거를 들어 비난하는데 귀착한다고 인정함으로 이유없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형사소송법부칙 제1조 법령 제181호 제4조 바항 구 형사소송법 제446조에 의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병로(재판장) 김세완 김갑수 허진 대리판사 대리판사 대법관 한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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